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로쿼이 연맹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1920px-Haudenosaunee_Territory.png|width=300]]|| ||보라색: 이로쿼이 연맹의 최대 영토 [br] 분홍색: 현 이로쿼이족의 원주민 보호구역|| [[모호크]], [[세네카]], 오네이다, 카유가, 오논다가 부족이 그 구성원이었으며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이주해온 투스카로라 족[* [[로어노크 식민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투스카로라 족의 일부는 로어노크 식민지의 구성원이던 [[영국]]인들의 후손들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현재 투스카로라 족에 대한 DNA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이 1722년에 합류하면서 6개 부족이 되었고, 이에 기인하여 이로쿼이 6부족(Six Nation of Iroquois)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연합이라는 구조상 이를 잘 이어나가려면 많은 규율과 법 등이 필요했다. 그것들은 매우 효과적이고 편리했기 때문에 독립군이 미국을 건국할 때[* 미국도 연합이다.] 헌법의 틀을 이것으로 잡았다. 이들 부족들은 모두 모계사회로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다. 여성이 결혼할 경우 결혼전에 소유한 자신의 재산은 따로 관리했으며, 자식들은 어머니쪽 부족을 따랐다. 이혼할 때 자식의 양육권도 여성에게 있었으며 모두 지도자로 부족의 어머니(clan mother)라는 가장 나이 많은 여성을 두었다. 부족장은 세습직이었는데 부족의 어머니가 부족장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부족장을 교체할 수도 있었으며, 이렇게 교체되는 건 불명예스러운 일로 간주되었다. 실제 프랑스식 발음은 '이로쿠아'. 물론 지역 방언에 따라 끝 발음은 약간씩 차이가 난다. 하지만 큰 틀은 영, 미, 캐나다 공용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제작된 (영어로 된) TV 다큐멘터리를 참고해 볼 때, 캐나다 쪽에서는 주로 이로쿠아, 미국 쪽은 이로쿼이로 발음하는 듯하다.[* [[CBC]] 다큐멘터리 Canada - A People's History 참조.]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에 오기 전부터 이미 연맹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근처의 알곤킨 어를 쓰는 다른 부족들과는 전통적으로 적대관계였고 그들과 싸우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이로쿼이라는 명칭 자체도 알곤킨 어에서 이들을 부르는 멸칭(의미는 '뱀 같은 놈들' 내지 '못된 놈들')이 기원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네덜란드 인들을 시작으로 유럽 인들이 북아메리카에 도래하여 모피 무역을 시작하자 이를 독점하기 위해 [[프랑스]]와 그 동맹 부족인 휴론 족을 상대로 비버 전쟁(Beaver Wars)을 벌이기도 했으며, 네덜란드 인들과 무역을 하던 [[모히칸]]부족을 오늘날의 [[뉴욕]] 주에서 몰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전쟁에서 진 부족들은 이로쿼이 연맹을 구성하는 부족들에게 흡수되기도 했다. 북미 원주민의 역사 자체가 워낙 마이너하고 인지도가 낮은 분야이긴 하지만 유럽 세력과의 접촉을 비교적 순조롭게 넘겼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접촉 한창 이후인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에 걸쳐 한때는 한쪽을 지원하는걸로 영불간 경쟁구도의 무게를 완전 기울일만한 국력의 전성기를 일구어냈다. 다만 불가피한 생리학적 재앙인 구세계 질병과의 접촉은 어쩔수 없는지 전성기때도 이로쿼이의 전사는 천단위를 넘지 못했고 구성 부족 불문하고 전염병으로 픽픽 죽어나는건 일상다반사였던 모양이다. [[7년 전쟁]] 때는 영국을 도왔다. 프랑스의 동맹은 언급했던 알곤킨 족이었다. 후에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연맹이 결성되고 나서 처음으로 정치적인 분열이 일어나게 되면서 이로쿼이 연맹의 전성기도 끝장났다.[* 물론 근본적인 기술력, 인구 차이를 생각해보면 연맹이 유지되었어도 훗날 미국의 팽창을 막았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적어도 해체 이후 각 구성 민족들이 상당히 허무하게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전형적인 식민침략자식 사기계약+의도적 알콜중독 조성으로 인해 와해된것보단 더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라질땐 사라져도 지금까지 미국사에선 강력한 역사적 존재감을 내뿜는 [[리틀 빅혼 전투]], [[세미놀 전쟁]], 아파치 항쟁 같은 치열한 저항을 남긴 남부, 중서부, 서부의 원주민 나라들과는 달리 이로쿼이 구성민족들은 서부로 이주한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총한발도 못 쏴보고 미국에게 흡수, 동화당했다. 물론 이런 비교적 충돌없는 흡수의 긍정적인 반대급부로 이로쿼이 구성 민족들은 전반적으로 [[운디드니 학살]], [[체로키]] 눈물의 길 같은 괴멸적인 학살도 비교적 덜 겪고 현존하는 북미 원주민 민족 (nation) 치곤 어느정도 공동체가 보존된 편이다. 물론 북미 원주민 치고말이다.] 이로쿼이 연맹에서는 처음에는 중립을 유지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어느 한쪽에 가세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지자 세네카, 카유가, 오논다가 족은 영국의 편에 섰으나, 오네이다와 투스카로라 부족은 13개 주의 편에 선 것이다. 모호크 족은 조지프 브랜트가 영국 편을 들고, 조지프 루이스 쿡이 식민지 편을 서면서 분열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전쟁이 끝난 후 연맹이 해체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문화적, 종교적 의미로서의 연맹은 연맹의 정신을 기린 부족들이 부활시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부활한 이로쿼이 연맹은 일단 명목상으로는 [[미국]] 정부와 별개로 외교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가령 [[빈 회의]]에 이로쿼이 연맹 대표가 참가하기도 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미국]] 정부가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하자, 이와 별개로 이로쿼이 연맹이 추축국을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외교권 행사가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의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한때 [[북아메리카]] 동부 전역을 호령하던 과거사를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이런 모습을 꽤 보여준 바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